한국의 100대 명산
속리산
속리산의 높이는 1,058m이다.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솟아 있다.
784년(신라 선덕여왕 5)에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 수도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하였고, 광명산(光明山)·미지산(彌智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1,032m)·문장대(文藏臺:1,054m)·관음봉(觀音峰:982m)·길상봉(吉祥峰)·문수봉(文殊峰) 등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명산으로 꼽히는 속리산은 화강암의 기봉과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산중에는 1000년 고찰의 법주사(法住寺)가 있다. 봄에는 산 벚꽃, 여름에는 푸르른 소나무, 가을에는 붉게 물이든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문장대에 서면 산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엄청난 절경을 느낄 수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문장대를 일명 운장대(雲藏帶)라고도 한다.
이 외에 입석대(立石臺)·신선대(神仙臺)·경업대(慶業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瑚臺) 등 8대와 8석문이 있고, 은폭동계곡(隱瀑洞溪谷)·용유동계곡(龍遊洞溪谷)·쌍룡폭포(雙龍瀑布)·오송폭포(五松瀑布) 등 명승이 많은 곳이다. 법주사에는 법주사 팔상전(국보 55)과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5), 법주사 석련지(국보 64),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15),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 국보, 보물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가 있고, 사찰 내에 있는 속리의 유명한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속리산 천왕봉 최단코스
천황사에서 시작하는 코스
(도화리코스)
네비에 천황사 찍고 가면 유료주차장이 있다.
5,000원 내고 이용이 가능하다.
도화리 천왕봉주차장 - 능선 - 천왕봉 정상 5.9km
왕복 약 3시간 소요
( 가볍게 커피한잔 휴식 포함)
천왕사에서 시작하여 정상까지 1시간 30분 커피 한잔 후 하산시작으로 천왕사로 회귀 50분 소요.
초반에는 평탄한 길이었으나, 계곡을 따라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깔딱고개와 정상까지의 코스는 쉽지 않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힘든 코스였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문장대 등 주변산의 풍광에서 땀흘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법주사에서 시작하는 코스
법주사(세계문화유산) - 세심정 휴
게소 - 문장대 - 신선대 - 천왕봉 - 세심정 휴게
소 - 법주사 13.83km
왕복 약 7시간 소요
법주사 입장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인지 입장료가 있다.)
성인: 5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000원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 있는 이정표
도화리 2.7km
문장대 3.4km
법주사 5.7km
도화리 코스가 천왕봉 최단코스인 것을 알 수 있다.
입산시간지정제 안내
도화리에서 통제시간
천왕봉 방향 15시 (동절기 13시)
천왕봉~문장대 일주 14시 (동절기 12시)
속리산은 국립공원으로 입산시간지정제로 운영하
고 있다.
속리산 문장대
문장대 높이 1,054m이다.
큰 암석이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관음봉(觀音峰)·천황봉(天皇峰)과 함께 속리산(俗離山)에 딸린 고봉이다.
산마루에는 약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빈터가 있고,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쇠다리가 놓여 있어 오르내리기에 안전하며, 북쪽 절벽 사이에 있는 감로천(甘露泉)이 유명하다.
1970년 3월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보은 속리 정이품송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 가운데에 서 있는 소나무이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이다.
지정사유 노거수. 법주사(法住寺)의 소유이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4.5m, 가지의 길이 동쪽 10.3m, 서쪽 9.6m, 남쪽 9.1m, 북쪽 10m이다.
이 나무가 차지한 면적은 1158.3m2이다.
1464년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이라고 지금의 장관급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밑부분에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아직도 수세가 싱싱하고 수형은 우산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1982년부터 10여년 동안 높이 18m에 이르는 8각주형의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에 이 지역에 피해를 준 솔잎혹파리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백두대간에서의 속리산
지질학상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구분되는데, 현재의 히말라야·알프스 등 대산맥들은 습곡·융기 등의 조산운동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지형도 대부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신생대 3기와 4기에 걸친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나 동쪽이 높고 서쪽은 좀 낮은 지형이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큰 줄기'를 말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반도의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의 신성화와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 개념이었다. 백두산은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백두산은 우리 국토의 생명력의 원천이며, 그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국가의 심장인 수도의 명당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 백두산은 우리 영토 내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백두산을 국토의 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백두산이 현실적으로 우리국토의 머리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조선 초 세종 때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함에 따라 백두산이 민족의 산으로 자리하게 되었을 때이다. 그 후 백두산은 국토의 뿌리로서 정신적·상징적 의미가 더욱 강화되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태백산·지리산에 이르며, 산줄기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진 산지능선을 말한다. 이 산줄기는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두타산으로 내려오다 크게 용틀임하듯 굽어져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으로 뻗어 내린다. 이 후 추풍령,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나는데 그 길이는 도상거리 약 1,630㎞, 높이는 100여 m에서 2,740m까지 이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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